사진은 기억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틈을 탐구하는 매체이며, 기억은 과거의 감정이 시간 속에 침전된 형태이며 촬영은 그 침전된 감정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오는 행위다.
나는 상실의 경험 이후, 도시를 목적 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 걷는 행위는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방식이자, 동시에 내면으로 깊어지는 과정이되었다.
길을 잃듯 걷는 동안 마주한 도시의 금간 벽, 먼지 쌓인 구조물, 변화된 사물들은 단순한 파손이나 흔적이 아니라, 존재가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처럼 다가왔다.
그곳에서는 본래의 모습과 지금의 시간이 겹쳐 보이며, 그에 반응하는 감정 또한 하나의 층위로 고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감정의 중첩은 과거의 선택과 갈림길을 지나온 또 다른 가능성의 나, 즉 전위된 세계 속 자아가 느꼈을 감각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촬영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서로 스며드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세계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자, 그 신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라진 것을 재현하기보다, 남아 있는 감각을 다시 구성하고 그 질감을 사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은 나를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하기보다, 오히려 더 존립 가능한 상태로 이끈다. 사진은 나에게 상실 이후에도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며, 감정이 다시 호흡할 수 있는 자리다.